명함지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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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에서 창의성은 예술적 의미에 국한되지 않는다. 문화 산업은 물론 기업 경영, 교육, 광고, 과학기술, 도시 정책, 심리학 등 사회 전반에서 요구되는 중요한 능력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개인 스스로 창의적인 사람이 되고자 하는 동시에, 사회에서도 창의력을 요구한다. 창의성은 언제, 왜 우리 사회에 등장했을까. 창의성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얻고자 하는 걸까?

책은 창의성 열풍의 기원을 추적해 그 개념에 담긴 사회적 의미를 탐색한다. 문화사 연구자인 저자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거대해진 대중사회에 대한 우려와 공포가 확산하는 가운데 상황을 반전시킬 개념으로 창의성이 주목받았음을 발견한다. 획일화로부터 개인의 자율성을 구해내고 자본주의에 인간적인 가치를 입히려는 열망을 담기에 창의성은 세련되고 매력적인 개념이었다.

창의성은 나만이 가진 것, 개성의 표현이기도 하고 기업에서 수익 창출을 위한 전략을 수립할 때나 사회 문제를 해결할 때 요구되는 자질이기도 하다. '창의성'이라는 단어는 예술을 넘어 다양한 분야에서 등장한다. 책은 창의성이라는 단어의 사용이 1950년대 전후 시대에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당시 사회가 왜 창의성 개념에 열광하고 이 개념을 정립하려고 노력했는지를 들여다보며 창의성에 담긴 다양한 의미를 읽어내고자 했다.


김주혜 작가는 17일 서울 인사동 나인트리호텔에서 간담회를 갖고 신간 ‘밤새들의 도시’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그는 지난해 데뷔작 ‘작은 땅의 야수들’로 톨스토이문학상을 수상하며 국제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작가다. ‘작은 땅의 야수들’은 식민지 조선의 격랑 속에서 펼쳐지는 사랑과 인간의 생존 본능을 그린 소설로 14개국에서 출간됐으며 드라마 시리즈로도 제작 중이다. 전작이 역사를 배경으로 한 한국적인 소재였다면 신간은 한 발레리나의 예술에 대한 열망, 고통 그리고 구원을 소재로 한 보편적인 이야기다.

‘밤새들의 도시’ 집필 계기에 대해 그는 “9살에 시작한 발레는 평생 열정의 대상이었고 안식처였다”며 “편집자가 차기작을 묻자마자 발레 소설을 쓰겠다고 결심했다”고 소개했다. 개인적인 경험이 풍부하다 보니 집필도 빨랐다. 이틀 만에 등장인물과 줄거리가 떠올랐고 전체 집필 기간도 2년에 불과했다. 데뷔작은 6년이 소요됐다.

‘발레 소설은 잘 팔리지 않는다’는 출판사의 반대에도 그가 고집한 이유는 예술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다. 김 작가는 “요즘 시대에 예술은 사치가 아닌가라는 질문을 항상 한다”며 “정직한 답을 찾고자 발레 소설을 썼다”고 말했다. 그는 “예술이 추구하는 미(美)는 사랑과 인간애로 귀결된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라며 “전쟁과 양극화의 시대에 예술은 더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신간도 데뷔작과 마찬가지로 영어로 쓰였고 한국어로 번역·출간됐다. 1987년 인천에서 태어나 9살에 미국으로 이민을 간 김 작가는 한국어에도 능숙하다. 그가 영어 소설을 쓰는 이유는 영어가 상대적으로 편하기도하고 본인이 추구하는 문학과 더 잘 맞기 때문이다. 그는 “영어는 언어 구조상 논리적으로 긴 호흡의 문장을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며 “개인적으로 긴 호흡의 글을 좋아하는 데다 요즘같이 산만한 시대에는 문학 작품의 호흡이 더 길었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설명했다

저자는 창의성 열풍이 젊은이들의 반항 정신에서 비롯됐으리라 예상했던 것과 달리, 시대의 문제의식에서 시작됐음을 발견한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미국은 이후 경제 호황을 누렸으나, 사치스러운 풍요, 대량 살상 무기를 생산하는 데만 능숙한 기술적 수단들, 대중매체가 주도하는 소비주의, 끊임없는 실용주의를 특징으로 하는 기업 자본주의, 무기력한 관료제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

가장 심각하게 느끼는 문제는 획일화였다. 이는 홀로코스트와 히로시마 원폭 투하, 스탈린의 강제수용소를 떠올리게 했다. 이 같은 공포 속에서 우파와 좌파를 막론하고 각계각층은 개인주의를 구해내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했고, 심리학계를 비롯한 다양한 분야는 창의성 개념을 통해 사회 분위기를 전환시키고자 했다.

책은 창의성을 인간 본성이 아닌, 현대사회를 지배하는 가치의 기원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한다. 창의성에 담긴 시대정신과 그 속에 깃든 비판의식을 읽어낸다. 창의성이 어떻게 특정한 사회적·역사적 조건 속에서 형성되고 소비돼 왔는지도 보여준다. 창의성이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며, 지금 우리가 창의적이기를 원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또한 묻는다. 창의성에 대한 깊고 비판적인 사유를 공유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창의성은 수입된 개념이다. 창의성이란 개념에 대해 깊게 생각해본 적 있는 사람은 드물 수 있다. 단순히 유행을 따르려던 것은 아니었을까, here 우리는 창의성이란 말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을까. 책을 통해 창의성 개념을 우리의 것으로 소화하고 해석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볼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인공지능 시대에 창의성 개념이 어떻게 변화하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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